1992년-2000년 PS연맹
글쓴이 : 사무국장   조회수(8684)   등록일 : 2003-01-15 오후 1:20:00   파일 :

본연맹은 92년 코란도, 삼성전관, 버팔로, 거상등 6개팀이 제일스포츠의 현 남부삼수석 총무의 주최아래 3번의 풀리그로 구덕야구장, 부산공고, 경남고등에서 시작되었다.

야도 부산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각기 많은 팀들이 사회인야구 활동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때의 리그 출범은 사회인 야구가 부산에 정착할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93년에는 12개팀으로 부산의 타 사회인리그 보다 한발앞서가면서 심판의 전문화와 지금의 리그규약을 정립하게되었으며, 해를 거듭하면서 95년에는 20개팀으로 늘면서 새로운 경기방식을 채택하게되었다. 지난해 성적으로 a.b조로 나눈 다음 풀리그를 2회 가지는 방법으로 리그를 진행하였고 이때 선수출신에 관한 규정도 확실시되었다.

선수출신의 경기 참가에 따른 제약은 경기에 5명까지 뛸 수 있으며, 선수출신이 투수를 할 때는 아웃카운트에 관계없이 4이닝까지 투구할수 있는 규정이 확실시 되었다. 그리고 이해해는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는 프로출신 및 대표출신등의 선수출신이 리그에 대거 영입되어 경기수준을 향상기켯을 뿐 아니라 매경기 4강진입을 위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선수출신이 없는 팀들의 실력차가 너무 심해져 리그의 전체 균형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96년부터는 연맹회원들의 의견수렴을 통해 1부와 2부로 나뉘어 리그를 진행하게 되었으며 뿐만아니라 부산외대 팀의 참가로인해 전경기를 기록화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다소 각팀들의 참가비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아지기는 했지만 연맹회원들의 야구에대한 열정으로 리그운영은 큰 어려움은 없었다. 96년 기록의 전산화가 이루어지면서 각팀들은 한달에 2회씩 리그소식과 팀순위 개인성적등을 약소한 형식이었지만 경기때 마다 받아보면서 개개인의 성적등을 확인하면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가곤했다. .1.2부 나뉘어진 96년에는 1부에 페가수스팀 2부에 tnt팀이 가각 싸이크론과 쉐인팀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가졌다.

해마다 참가팀이 증가하는 현상은 97년에도 이어졌다. 이로인해 경기장의 부족이 가장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문제의 해결을 위해 임원단에 재구성되고 참가비도 소폭인상되기도 했지만 구덕야구장을 한달에 2번 사용하게되어 리그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다. 96년 보다는 좀더 체계적인 리그운영이 이루어졌고 기록또한 모두 전산화 처리되었다. 참가팀의 증가로 인해 1부와 2부의 구분을 확실히 하여 매년 1부 최하위 2팀은 다음해 2부로 내려가고 2부 1.2위 2팀은 1부로 올라가는 규정을 정했다. 이해의 총경기수는 236경기로 국내 단일 사회인리그로서는 최고의 경기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전경기를 부산시 야구협회의 공식 심판원이 심판을 보고 대회 기록원이 정해져 좀더 체계적인 리그 운영이 시작되었던 해였으며, 우리나라 정보통신의 선두주자인 sk telecom에서 후원을 시작하여 리그 명칭도 카멜레온 리그에서 sk리그로 변경하여 새로운 출바를 시작한 한해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많은 다른 리그연맹에서 경기를 하는 팀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우리리그쪽으로의 참가신청이 대폭 증가하였다. 이에 98년에는 참가팀이 무려 33개팀으로 다시 경기장이 부족한 실정에 이르게 되었다.

경기장을 더 확보할수 있는 뚜렸한 대책이 없어 그야말로 1년 동안 풀리그를 하면서 6.7.8월은 하루 4경기를 실시하는등 어렵게 한해 총경기 278경기를 모두 소화해 내기도 했다.

IMF의 경제한파가 우리 연맹에도 조금의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몇몇의 직장팀이 해체되고 연맹회비등도 개개인의 경제여건의 어려움속에 연맹참가비 미납팀이 많아져 다소 어려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IMF의 전체영향에 비하면 그다지 큰바람이 불지는 않았던것 같기도 하다.

각팀이 안정을 찾으면서 다시 99년 새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역시 신생팀의 참가가 많아졌다. 지금까지는 참가의사를 가진팀은 모두 연맹에 가입할수 있었던 조항을 조금 수정하여 참가신청팀에 대한 자료등을 받고 분석하여 좀더 열정을 가진팀을 선발하여 리그에 참가시켰다. 이로 인해 99년에는 총 38개팀이 320경기를 치루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모두들 부지런히 움직여 리그 진행에는 별무리가 없었다.

또 기록의 전산화를 홈페이지에 옮겨 인터넷으로 리그 참가팀 뿐 아니라 야구를 사랑하는 많은 팀들이 우리 리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첫 실행이라 다소의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여 회원들에게 불만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첫시행이라는 점에서 모두들 다 이해 하시고 격려하는 메시지 덕분에 2000년 올해 이렇게 새로운 홈페이지를 제작하게 되었다.

대장정과 어려운 운동장 사정으로 어느해보다 많은 문제점이 나타난 한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팀들의 협조와 이해로 전경기 340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

1부리그와 2부리그의 이름을 각각 드림리그 매직리그로 나누어 리그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1부 17개팀중에서는 부산외대와 싸이크론이 결승전을 펼쳐 싸이크론이 창단 5년만에 첫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2부 매직리그에서는 대봉과 칼마가 결승전을 했고 대봉역시 첫우승의 영광을 만끽했다. 이로서 2000년의 우리리그는 12월 3째주 폐막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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