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동 원 (펀글)............
글쓴이 : 아자아자55   조회(2116)   등록일 : 2005-08-16 오후 5:21:00

한국야구는 70년대중반 최동원.김시진.김용남 트리오가 등장합니다. 당시 두김투수는 장신(180이상).최동원은(177)비교적 적은키로 76년시즌초 언론은 두김투수에 다소 점수를 더 줍니다. 실제 대통령배 결승 군산상vs 대구상 완투대결 김용남이 1대0승을 합니다. 최동원은 신일 김정수와 맟붙어 3대0패를 하며 탈락합니다. 이어진 청룡기 최동원이 원맨쇼를 합니다. 대건고(10탈삼진),선린상고(11탈삼진),군산상고(20탈삼진),군산상(최종결승:12탈삼진) 36이닝 53탈삼진을 잡습니다.9이닝 최다피안타 3개입니다.

이후 한국야구의 슈퍼스타로 군림합니다. 한일고교야구 한국의 ACE로 일본을 제압합니다. 청룡기이후 신일고 김정수징크스를 못이기고 모두 탈락합니다. 당시 이우상을 제외한 경남고타력이 매우 약했습니다.

연대 입학후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1년생으로 이광은을 밀어내며 ACE로 부상하고 6개대회중 5개대회를 석권합니다.김시진.김용남을 동시 보유했던 한양대도 연대 최동원에 막혀 우승을 못합니다.당시 거의 전경기를 최동원혼자 완투합니다. 이틀간 27이닝 33삼진.슈퍼월드컵우승을 77년 연대1년생때 좌완 이선희와 함께 이루어냅니다.한.미대학야구,대학.실업올스타 전부 ACE로 참가합니다. 9이닝기준 거의 전 경기 두자리수탈삼진 기록을 남깁니다. 대학2-4년때는 부동의 국가대표 ACE로 대한민국 최고투수로 군림합니다. 1년생부터 메이저리그의 집중표적이 됩니다. 국가대표 시절 중남미팀에 특히 강해 15탈삼진전후를 항상기록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학시절 국.내외경기 50완투승이상은 능히 기록되리라 봅니다.

출신교 올스타전 야구대제전 경남고1,2회 우승주역이 됩니다.(78,79년) 이 대회는 프로출범으로 없어집니다. 아마 한국야구사상 아마야구에서 최동원처럼 화려한 지배를 이루어낸 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시절 이미 최동원은 불펜에만 보이면 주눅들던 선동열의 모습을 대학시절 미리 보여줍니다. 주무기는 강속구와 폭포수커브 딱 두가지.절묘한 제구력.담력.체력.정면승부.

졸업후 실업롯데 입단(81년).17승으로 최다승.신인왕.MVP차지.이해 김재박이 실업 7관왕을 합니다. 실업야구 81년 코리언시리즈 김시진의 경리단을 상대 6게임연속등판 2승1세이브 우승주역이 됩니다. 이때도 단기간 40여이닝을 혼자 투구합니다. 이상이 아마시절 대한민국 최고투수 최동원의 약식 이력서입니다. 최동원이 최고투수논쟁에서 선동렬에 밀리지 않는건 이런 화려한 아마의 재산 때문입니다.

프로 100승과 1,000탈삼진, 84년 한국시리즈 4승은 최동원야구인생의 보너스라고 생각합니다. 전성기를 너무일찍 소진한 대투수의 훈장이라고 할까요. 프로이후의 최동원을 기억하는 분에게는 도움이되리라 보고 적은글입니다. 이렇게 혹사당한 최동원이 프로통산방어율 2위임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최동원,선동열을 잇는 대투수는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보군중 박동희.정민태.문동환.박찬호 등은 아직은 두투수 레벨이 아닙니다. 박찬호의 스피드는 인정하지만 투수의 완성도는 많이 모자랍니다.

장담은 못하지만 최.선이 미국에 갔다면 박찬호이상으로 되었어리라 보며,슬라이더의 선동열보다 수직커브의 최동원이 다소 유리했으리라 여깁니다. 메이저리그가 주목한 최동원.선동렬의 후계자는 박동희,고교생 위재영 등이 있었습니다.

대투수 최동원이 한화이글스 2군투수코치로 현장에 남아있지만. 그의 불같은 투구폼이 지금도 그리워집니다




[이전글] 남해 캠프 가실 팀~~*
[다음글] 28일 일정팀 1경기만 21일로 변경해주십시오.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수
野球의 魂™ 최 동 원 (펀글)............ 2005-08-16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