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 한국야구, 사나이 조성옥을 잃다 김성원 기사전송 2009-07-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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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간스포츠 제공]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2000년 봄 부산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실은 커다란 하늘색 컨테이너였고, 홈플레이트 오른 편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조그만 방 하나가 있었다. 묵직한 브라운관이 번들거리는 TV 하단에 비디오테이프를 집어넣으며 조성옥 감독이 입을 열었다. "김기자, 이거 한번 보소."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의 1998년 8월 고시엔대회 준결승전과 결승전. NH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프로였다. 연장 17회 250개의 공을 던지면서 승리 투수가 된, 그래서 헤이안시대의 괴동을 거쳐 메이저리그 최고 반열에 오른 마쓰자카와 요코하마 고교 야구팀, 그리고 와타나베 모토노리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다. 10여년도 더 된 기억이라 어떤 것은 과장돼 있고, 어떤 것은 왜곡돼 저장됐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은 지금도 또렸하다. 덕아웃에 있던 상대팀 전령이 마쓰자카의 쿠세(투구시 특정 구질을 던질때 노출되는 버릇)를 읽어내는데 성공, 동료 타자들에게 수신호를 보낸 장면이 제작팀의 촬영에 캐치됐다. 또 하나. 결승전서 마쓰자카가 노히트노런을 앞두고 긴장한 얼굴이 역력하자 와타나베 감독이 올라와 손가락을 1, 2,3,4 하고 펼친다. 1-4까지 속으로 세면서 자신의 템포를 찾으라는 것이다. 1-3에서 투구를 던지지 말라는 신호였다.기자는 당시 두 가지에 놀랐는데 고교야구 한 게임을 가지고 매우 정교하고 놀랍게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난 이 비디오를 100번도 넘게 봤다"는 조성옥 감독의 말 때문이다. # 일본야구 56년만에 결승전 노히트노런으로 마무리 된 마쓰자카 최고의 경기. 게임 종료후 와타나베 감독은 요코하마 고교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멘트를 했다. "주전만 보살피면 안 된다.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학생, 그들에게도 눈을 돌리지 않으면 팀이 강해질 수 없습니다." 화면속 고시엔구장에서 소년 마쓰자카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던 와타나베 감독의 이 말은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구철학일 것이다. 기자는 조성옥 감독을 통해 와타나베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무척 많이 들었다. 스물 다섯도 채 되지 않아 요코하마 고교 야구부를 맡은뒤 반깡패나 다름없던 부원들과 피흘려 가며 주먹다짐 했던 에피소드라든가, 저녁 도시의 불빛을 쫓아 밤에 나가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 부원 전원의 발과 자신의 발을 묶어놓고 잠을 청했던 일들.
#야구인, 지도자 조성옥이 가장 존경했던 지도자와 선배는 누구였을까. 와타나베 감독이었을게다. 기자는 그와 십수년 만나고 취재하고 보면서 단 한차례도 와타나베 이야기를 안 들어본 적이 없다. 알고 배우고 존경하게 되면 닮아간다. 그는 와타나베를 닮고 싶어했다. 부산고 제자이자 지금은 클리블랜드 4번 타자로 성장한 추신수. 그의 고교시절 별명은 '눈물왕자'였다. 매일 우는 거다. 중학교 시절부터 추신수를 데려가고 싶어 발 벗고 나선 고교는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엘리트다. 그런데 부산고 진학해서 훈련때마다 울었다. 프로야구 롯데 시절 동료였던 김민호 현 부산고 감독은 지난해 이 해답을 풀어줬다. "추신수처럼 야구 잘 하는 애가 감독 겁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잘 할수록 더 혼낸 거다. 잘 하는 애들도 본헤드 플레이를 한 차례 한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붙였다." 2000년 8월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간 수장 조성옥은 SK에 지명된, 공격형 포수라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에서 탐내던 정상호 대신 주전으로 송산(단국대-KIA)을 홈플레이트 뒤에 앉혔다. 정상호는 밤에 울었고, 추신수의 컨디션은 나빴으며 역시 5억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은 이정호(당시 대구상고)의 효과적인 기용이 쉽지 않았다. 우승을 차지한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조성옥은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 이야기한건지 알듯 모를듯한 태도로 예의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 "중요한 건 팀이야. 그래야 강해지는거야."
[사진=일간스포츠 제공]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선배는 고 심재원씨였다. 선동열 삼성 감독이 대표팀 투수 시절 불펜피칭을 할때 원하는 코스가 아니면 발도 움직이지 않고 다시 공을 줏어오게 하던, 그런 리더십과 오기, 그리고 강단. 강한 개성이 모인 대표팀에서 더 강한 개성으로 대표팀 후배들을 추스르던 카리스마. 조성옥은 그를 닮고 싶어했고 그렇게 했다. 투박하고 사나이 다워서 조서방이라는 별명이 주어지고, 롯데의 팀 컬러를 만든다고 해서 군기반장이었다. 1984년 프로야구 롯데 첫 해 우승을 맛보고, 1992년 우승, 마지막 해인 1995년 준우승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롯데 코치를 마치고 모교였던 부산고 감독으로 들어간 뒤엔 팀을 대통령배 2연패로 이끌었다. 추신수 백차승 장원준 정근우 등 프로에 포진해 있는 뛰어난 선수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가 지도자로서 더 신경썼던 것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제자들이었다. 엘리트가 아니라 팀이었다. '그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으면 팀이 강해질 수 없다'는 말 처럼 말이다. #2006년 봄. 추신수가 아직 시애틀 마이너리그에 있던 시절 3할2푼대 타율을 기록하다가 한달 넘게 부진하면서 2할7푼대로 떨어졌다. 부산의 고교 스승 조성옥에게 전화를 한 추신수는 어린 시절, 올드스쿨의 ABC를 수화기 너머로 전해들었다. "타율에 신경쓰지마. 팀 플레이에 신경쓰자. 성적은 그러면 자연히 따라오는 거야." 팀의 공격 상황에 맞춰 나를 잊고, 나를 버리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해답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귀에 박히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추신수의 장타는 이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목표가 그날 그날을 지배한다' 라는 말은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의 좌우명이다. 요코하마 고교 시절인 와타나베 모토노리 감독으로부터 선물받은 쿠도 시즈카의 제 1보라는 시의 한구절이라고 한다. 향년 49세. 조성옥 감독이 간암으로 저 세상으로 떠난 지난 주 토요일 아침. 큰아들 조찬희 군은 추신수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추신수는 배팅글러브에 스승의 이름 이니셜 C.S.O을 새겼고 또 뭔가 깨알같이 적어넣었다고 한다. 어떤 글귀였는지 몰라도 고교시절 혼나고 울고, 새벽같이 나와 부산고 운동장을 뛰고 달리며 감독에게 들었던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던 조성옥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와타나베 감독은 현재 고시엔대회 예선을 치르고 있어 빈소에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대회를 마치고 납골당에 들르기로 했다. 조 감독의 운구 맨 앞엔, 키가 작아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던, 그래서 조 감독이 연신 뛰어다녀 대학(고려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한국 프로야구 대표 타자로 성장한 정근우(SK)가 있었다. 간암 말기로 세상을 뜨기 전날까지 조성옥 감독이 걱정했던 것은 대학야구 하계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동의대 야구부 였다고 한다. 동의대는 8일 우승기를 하늘로 떠난 스승에게 바쳤다. 김성원 일간스포츠 야구기자 現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엑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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