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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중,일 합작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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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태윤 조회(1879) 등록일 : 2005-07-25 오후 4:46:00 |
야구와는 동떨어졌지만... 무더운 날씨에 조금이나마 가슴 시원한 글인가 싶어 퍼왔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알고 있는 알랙산더, 징키스칸, 나폴레옹, 제갈공명.손자 등 ..... 전세계의 위대한 영웅이나 전략가들보다 더 뛰어나신분이 계시다는걸 아마도 우리민족이라서 더 모르고 있지않았나 봅니다...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990년~1998년 ...약 8년에 걸쳐서 중국학자5명과 일본학자7명 그리고 그외 일본사관학교 (육사.해사) 장교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으로 총 32권으로 발권된 책이죠
이 책은 크게 이순신장군 생애를 다룬 5권.(이순신은 누구인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2권 . 명나라가 본 이순신1권. 1500~1600년시대의 조선과일본 그리고 명나라 10권. 이순신과 임진왜란 5권. 토요토미 대 이순신 2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한 내용이 25권. 그리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이7권으로 나누워진 책입니다.
이중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장군님에 관한책이 2권이나 된다는것인데... 이순신장군께서 난중일기를 남기시듯.. 일본장수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와키자카와. 도도. 등등 .....특히 이 두사람은 이순신장군님에 대한 기록이 유별 나다고
합니다...아마 같은 수군이라서 그랬겠지요...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적이 있습니다. 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장군님 탄생때 온다는거.... 와키자카가 이순신장군님을 알게된건 한산도대첩때 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건 차이가 있겠지만... 아뭏든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 명예를 중요시 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 랄까 그런 묘한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중에 명장입니다... 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읍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번 이순신장군님에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장군님 탄생일때 오는가 봅니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장군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듯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바람속으로 거닐고 있는걸까? 궁금하던차에 한번 따라가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중 효행편을 읽어주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10살 의 어린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수 있겠는가!)
3.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조선에서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지략이 매우 튀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수 있을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메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이순신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게 충(忠)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4. 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이순신??? 내가 알고있는 이순신은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장수였던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연구회엔 나의 절친한 동료학자의 권유로 참석하였으며 그해에 그저 잠시나마 자리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터라, 나는 그저 일본교수진들의 말만 들을뿐..... 그러한 내게 작으나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화면가득 보여지는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저런배가 400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보고있었다.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지만... 그 시각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고 말았던것이다.. 더군다나 그차이는 중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는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이 아닌 이순신 이라는 한 인간을 보는것이었다. 일본교수진들은 이 연구회를 이순신 이라고 붙엿다. 즉.. 임진왜란 자체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되어서 바라보고 찾고 연구 하고 가설을 붙이는 것이엇다. 이는 우리 중국 어느 누구에게도 연구해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는 그 학술회가 끝나는데로 일본교수의 도움으로 이순신이란 인물에대한 책자를 얻을수 있었다. 7권으로 이루어진 이순신 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이었고. 나는 그7권을 단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으며, 책을 손에서 놓은뒤 내게 있어서 가느라한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순신....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 지금까지 우리 중국학자들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조선의 왕 선조는 그들을 막지못하고 의주로 몽진을 하여 우리 명나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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