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지리산은 닮은 꼴
글쓴이 : 아자아자55   조회(1854)   등록일 : 2006-05-26 오후 6:26:00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와 지리산은 닮은 꼴

기록위원회에서는 동계 훈련과정의 하나로 국내의 여러 산을 당일산행으로 등반하는 일을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다.

그런데 한ㆍ미ㆍ일의 프로야구 챔피언시리즈가 1990년 이후 15년만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4연승으로 조기 종료된 올해(2005),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공식기록원들은 다소 욕심을 부려 2박3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라는 고된 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치러냈다.

물론 등반과정에서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거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별탈 없이 참가자 모두 종주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지리산을 찾기 전, 사람들은 대개 종주를 하고 나면 말로만 듣던 지리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 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정작 종주를 마치고 나면 그 방대하고 깊은 품을 지닌 지리산에 기가 눌려 ‘종주’라는 것이 지리산 자락의 수많은 능선들 중, 불과 하나의 능선을 밟고 온 것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지리산 등반경험만 200회 이상에 이르는 어느 산악인은 ‘지리산은 가면 갈수록 모르는 것이 늘어만 간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지나친 겸손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막상 다녀오고 나면 그 말이 맞는 말임을 금방 알게 된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야구 관계자들이 유독 산을 많이 찾는 것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본다. 이는 체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를 얻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산을 가까이하는 터일 것이다.

공식기록원 생활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무렵, 한 5년쯤 하면 야구기록과 관련된 것을 웬만큼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식기록원 경력 15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 이르러서도 생각해보면 모르는 것이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다.

일하는 방법과 요령에 대해서는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야구’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학창시절에 '완전정복'이라는 참고서가 있었다. 야구에 기록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당시 스포츠 주간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야구기록에 대해 정복을 하고 싶다는 호기심어린 의욕과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복이라는 목표를 포기한 지 오래다.

자연 역시 결코 정복당하지 않는다. 산 정상을 오르지만 그것은 정복이라고 말 할 수 없다. 단지 그 곳을 밟고 돌아왔을 뿐이다. 야구도 그런 것 같다. 감독이나 선수는 물론이고 심판이건 기록원이건 제 아무리 야구를 많이 안다고 자신해도 야구란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만큼 방대하고도 복잡한 야구의 세계에 대해 다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종주의 후유증으로 입술이 부르트고 몸 아픈 곳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리산의 모습은 더욱 또렷해지고, 몸이 힘들어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에 대한 미련은 더욱 커져만 간다.

아주 멋진 명승부를 보고 난 뒤엔 그 여운이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한번 더 보고싶어 녹화된 비디오를 다시 틀게 되는 것이, 힘들어서 그 쪽은 쳐다보고 싶지 않다가도 끝내 다시 지리산을 찾게 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과 야구는 참 닮아도 많이 닮았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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