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가득염의 고난도 원포인트 릴리프와 손민한의 정성 경기 도중 원포인트 릴리프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는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덜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투구이닝이 절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경기의 흐름이 넘어가게 되는 순간이나, 경기 중에 적어도 두세 번은 찾아오기 마련인 크고 작은 승부처에 올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투구이닝만을 가지고 그 비중의 수위를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난 4월 3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롯데의 경기에서 롯데의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 전담 투수인 가득염은 그들이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않음을 입증해 보여주었다.
소속팀인 롯데가 7회초까지 3-0으로 리드하다 선발 장원준의 갑작스런 난조와 미들맨 이정민의 부진으로 졸지에 3-3 동점이 된 상황. 계속된 2사 만루의 위기에서 한화의 왼손타자 제이 데이비스와 맞딱뜨리게 되자 롯데는 가득염을 마운드에 올렸다.
여기에서 더 이상 실점해 역전으로 이어지는 날엔 확실한 마무리 구대성이 버티고 있는 한화에 다시 전세를 뒤집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시점이었다.
팀의 바람대로 가득염은 2-3까지 가는 풀카운트 접전끝에 데이비스의 헛스윙을 유도해냈고 롯데로서는 최대고비처에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돌아선 7회말, 롯데는 타자일순하며 집중 5안타를 묶어 대거 5득점, 8-3으로 멀찌감치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8회초 롯데는 이왕기를 마운드에 올렸고, 이왕기가 8, 9회를 깔끔하게 막아낸 덕에 롯데는 이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숙제는 구원승리를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 지에 대한 결정뿐이었다.
경기 종료 후, 자체 수훈선수로 호명된 선발 장원준은 7회 중반 물러나기까지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구원투수들이 자신이 남긴 주자들의 득점을 막지 못하고 추가 2실점, 경기가 동점이 되는 바람에 승리투수가 될 수 없었다.
한편 가득염은 리드시점(자기가 투구하는 동안 팀의 리드가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말)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투구이닝이 ⅓이닝으로 절대적으로 적었고, 반면 마지막 투수 이왕기는 2이닝의 투구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단순히 투구이닝만 비교하자면 그 비중은 이왕기가 훨씬 더 큰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득염이 기록한 투구회수 ⅓이닝은 단순한 ⅓이 아니었다. 이날 경기의 최대고비에서 자칫 한화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경기의 흐름을 붙잡아낸 가득염의 공이 없었다면 롯데는 이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러한 이유로 가득염의 후속투수가 누가 나오고 어떤 투구내용을 보이는 지에 상관없이 경기가 동점이나 역전만 되지 않는다면 가득염을 승리투수로 결정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중간에 나온 원포인트 릴리프 투수들이 승리를 얻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투구이닝이 적기도 하지만, 자기가 던지는 동안 팀이 리드를 얻어야 하는 행운도 따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욱이 리드시점의 운이 따라주었다 해도 등판 시점이 경기 중반이거나, 등판할 때의 상황이 경기에 별 영향이 없는 단순 원포인트 구원이었을 경우에는 구원승 결정에서 물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가득염은 이런 정황과는 많이 달랐다. 원포인트 릴리프 투수들의 등판이 가끔 별 의미를 갖지 않는 상황에서도 남발되는 경향이 간혹 있는 요즘이지만, 가득염의 이날 등판은 원포인트 릴리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그들도 경기의 성패를 한 순간에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막중한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롯데가 5점차의 여유있는 리드를 안고 승리를 마무리지어 가던 9회초, 선수 한 명이 문을 열고 "수고하십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록실로 찾아 들었다. "저기요, 이대로 끝나면 득염이 형이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지…."
"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득염을 단순한 원포인트로 보기엔 좀 그렇고…."
대답을 듣자 선수는 한마디를 더 거들었다. "그렇죠? 이왕기는 점수 차도 한참 벌어진 다음에 나와서…."
이렇게 합의 아닌 합의(?)가 끝나자 그는 엷은 미소를 띄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남기고 돌아섰다. "득염이 형이 한번 가서 물어봐 달라고 해서요…. 수고하십시요."
투구이닝이 절대적으로 적었던 가득염이 불안담긴 궁금증을 못참고 기록실에 가서 물어봐달라고 이 선수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 대개는 팀의 덕아웃 기록원들이 물어보러 오는 것이 통상적이다. 아니면 아주 신참급 후보선수가 오던가.
그런데 이날 찾아온 사람은 기록원도 후보선수도 아니었다. 선배 가득염의 기록을 챙기기(?) 위해서 기록실을 찾아온 사람은 바로 작년(2005) MVP의 주인이었다. 스타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도 아닌 한 선배의 기록확인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 손민한의 정성(?)이 아주 싱그럽게 보였던 하루였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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