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한 글(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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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아자아자55 조회(1208) 등록일 : 2004-04-01 오후 9:31:00 |
야구하러 가셨다면서요?" 근간에 선을 보았던 여자가 물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는 외로운 섬처럼 조용하고 그 섬에 살고 있는 작은 새들처럼 다정했습니다. "미안하게 됐어요" 일요일에 영화나 한편 보자던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주말마다 야구하러 간다라고 말했을 때 선을 주선했던 사람에게 '혹시 야구선수를 소개 시켜준 거 아니에요?...' 고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선을 주선했던 제 절친한 선배는 '야구선수들이 전부 파업을 하지 않는 이상 그런 무능한 친구를 선수로 쓸 팀은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야구란 스포츠는 낯선 외국어와 같이 생경한 것입니다.
"이번 일요일 야구는 어땠나요?" 통화 말미에 그녀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번 일요일 야구는 어땠나요... "그러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제가 야구복을 처음 입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체구도 작고 근력도 부족하고 더구나 흔히 야구선수가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센스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글러브나 배트야 동네 놀이터따위에서 또래 아이들과 테니스공으로 야구를 하며 몇번 접해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야구를 말할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야구란 건 날마다 달리는 게 아니거든. 간혹 뛰기만 하면 되는거야" 방과 후 운동장에서 오래 달리기를 하던 제게 야구부 소속이던 급우가 그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무슨 연유에선지 학교측의 강요로 육상부에 소속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 잘 달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당시 교장 선생님은 반에서 몇 명씩을 추려내어 육상부를 조직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담임선생님은 학교와 집 사이를 순전히 걸어서 통학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육상부 명단에 올리셨었습니다.
'야구란 날마다 달리는 게 아니거든. 간혹 뛰기만 하면 되는거야' 당시 급우의 말은 제 머리에서 인공위성처럼 매일같이 일정한 궤도를 돌았고 결국 야구부에 찾아가 입단을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육상부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운동부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입단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던 야구팀에서 저의 희망을 들어줄리 없었고 그나마 육상부 선생님과 막역한 사이였던 야구부 감독님께서는 저와 같은 사내아이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지 입단을 거부하셨습니다. "육상부였다니 뛰기는 잘 뛰겠는데...감독님 대주자로 써도 좋겠는데요" 그때 입단을 주선해 주셨던 분이 야구팀의 젊은 코치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 졸업앨범에서나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한국화장품에서 선수생활을 하셨던 젊은 코치 선생님....그 분은 저를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셨습니다.
야구부는 같은 반 급우의 조언처럼 매일같이 달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슬라이딩 연습때 무릎과 종아리를 긁히고 딱딱한 경식공에 이마를 맞는 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일어났지만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매일 달리지는 않지 않은가?'
하지만 저는 야구부에서 마치 락커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배트와 같이 특징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닥 타격에 재주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수비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 나이때 아이들이 흔히 각별한 애정을 보이던 투수로서의 자질을 보였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제 학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부모님의 권유로 목요일 이후부터는 방과 후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야구부 소속으로 야구복을 입고 있던 아이였지만 야구선수로 불리기엔 많은 것을 결.여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넌 성실히 달리는 선수란다" 젊은 코치 선생님께서는 낙담하던 저의 어깨를 두들겨 주시며 그렇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3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전국규모의 대회에 팀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2루수를 보던 동료 선수가 집안에 몇가지 사정이 실타래처럼 얽혀 가출을 하는 바람에 제가 인원에 포함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2루수 백업요원이 제 직책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개최하던 대회였는데 제 또래 중학교 야구선수라면 자신의 책상따위에 'ㅇㅇ기 대회 우승' 이라고 써붙여 놓을만큼 비중 있던 대회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야구연감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언제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어라" 젊은 코치 선생님은 스파이크 신기를 주저하고 있던 저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경기는 처음부터 상대 야구부의 압도적 우위였습니다. 상대 투수는 과묵한 사육사처럼 우리 야구부 타선을 제압했고 상대편 타자들은 우리 투수들을 증오라도 하듯이 무수히 많은 안타를 생산해냈습니다. 5회가 될 무렵 이미 스코어는 변심한 여자아이의 마음처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구란 정말 알 수 없는 스포츠인 것입니다. '야구와 정치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출신의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암스가 했다는 말인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6회 들어 상황이 변해갔습니다. 과묵한 조련사 앞에서 상냥한 야수처럼 얌전하기만 하던 우리 야구부 타자들이 믿기지 않을 타력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스코어가 1점까지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야구부원들의 환호는 더해갔고 그 환호만큼이나 상대 야구부 덕아웃의 기운은 커다란 냉장고를 개방한 듯 싸늘히 식어갔습니다. 저는 스파이크의 끈을 천천히 조이기 시작하였습니다.
7회초 다시 경기의 페이스는 역전되었습니다. 환호에 들뜬 탓인가 우리 야구부 구원투수의 갑작스런 난조와 연이은 실책으로 3점을 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4점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공격을 기다리는 우리 야구부원들 사이로 저는 스파이크의 끈이 더이상 조여지지 않을만큼 단단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회가 되도록 제 스파이크는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덧 상황은 7회말 1사 2,3루가 되었습니다. 감독님께서 타임을 요청하고 대타를 내기로 하셨습니다. 감독님께서 덕아웃에 앉아 있던 선수들을 차례로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감독님과 제 눈이 마주쳤지만 감독님께서는 저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눈이 아니라 팽팽히 단단하게 조여 있는 스파이크를 보시길 바랬지만 감독님의 시선은 제 눈만을 지나쳤던 것이었습니다.
대타로 나선 타자가 데드볼로 나가고 드디어 1사 만루가 되었습니다. 다음 타자는 우리 야구부의 가장 신용할만한 타자였습니다. 여기서 안타 하나만 나온다면 상황은 확실히 반전될 것이다...우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대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 저의 이름을 호명하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감독님께서 저의 이름을 부르며 1루 대주자로 나갈 것을 주문하였던 것입니다. '잘 보고 뛰되 안타가 나오면 최소한 3루까지 뛴다는 기분으로 달려야 해' 1루로 나가려는 저를 코치님께서 부르고 그렇게 당부하였습니다.
저는 들뜬 기분으로 1루를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그라운드의 지면과 맞닿는 스파이크의 기분은 마치 부드러운 푸딩을 느끼는 입술처럼 황홀한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우리 야구부가 그토록 기다리던 3루 강습안타가 나왔습니다. 2,3루 주자 모두가 홈인하고 저와 타자는 1,2루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잘 보고 뛰어라' 코치님이 들려주었던 주문을 떠올리며 저는 천천히 2루에서 리드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정직한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잘 보고 뛰자.....잘 보고 뛰자.....잘 보고
그러나 제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독려하고 있을 때 제 뒤에서 상대 야구부 2루수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제 스파이크는 이미 3루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2루와는 멀어지고 있었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타석에 들어 선 타자의 배트를 바라보며 3루로 뛸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투수가 저를 향해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슬라이딩을 시도할 겨를도 없이 상대 2루수의 글러브가 제 어깨를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순간 제 심장이 한가득 드라이아이스에 둘러싸인 듯 결빙되어갔습니다. 숨을 쉬지도 입을 떼어 항의를 하지도 못한 채 저는 얼음인간이 되어 2루에 서 있었습니다. 머리는 어두운 다락방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생각들만이 가득했습니다. 2루심이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저는 그렇게 영혼이 죽은 자세로 2루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덕아웃에 들어서자 동료 선수들은 아무 말 없이 등과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습니다. 감독님은 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담배를 꺼내 무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저의 주자아웃은 경기 흐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팽팽하던 긴장감은 상대 야구부에겐 안도의 한숨이 되어버렸고 추격의 의지를 보이던 우리 야구부에겐 절망의 감정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결국 2사 1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있던 타자는 힘없는 스윙으로 물러나고 경기는 우리 야구부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느 누구도 입을 열어 저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원망과 질책의 목소리는 저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 담담한 침묵과 어색한 표정들이 저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코치님께서 제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안아주시자 저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16살 소년이 흘릴 수 있는 일년치 눈물을 모두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이란다. 지금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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