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역사적인 날"
글쓴이 : KT강준호   조회(2115)   등록일 : 2008-09-17 오후 2:33:00



즐거운 추석 보내셨나요~~~

올해만큼 부산사람들에게 즐거운 추석선물은 없을거 같습니다..

8888577

생각하기도 싫은 숫자...
마해영의 저주라고도 하던데...그 저주를 마해영이 다시와서 풀어준거 같기도하고...
남들만 하던 샴페인 축하쇼를 롯데가 하는걸 보니 정말 실감이 나는거 같습니다...
올해는 충분히 우승헤 도전할만한 전력인거 같은데 꼭 우승하기를 간~절~히 ...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려 8년만의 일이다.
2001년 꼴찌를 시작으로 8등만 4번에 7등이 2번. 팬들은 롯데의 지난 7년간 순위를 딴 '888577'이란 신조어까지 만들며 롯데의 부진을 안타까워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은 지금의 롯데가 단단해지는데 좋은 자양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7년, 롯데가 걸어온 아픔과 굴욕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2002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2002년은 영광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롯데人'들에게 2002년은 본격적인 암흑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롯데가 꼴찌를 시작한 것은 2001년이다. 첫해엔 '그럴 수도 있다'며 넘겼다. 그러나 2002시즌에 접어들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롯데는 우용득 감독을 전격 경질하고 백인천 시대를 열었지만 문제는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추락을 거듭했다.

2002년 6월2일부터 6월22일까지 롯데는 창단이후 최다인 16연패를 당했다. 16연패는 현존하는 구단의 가장 긴 연패 기록(사상 최다는 삼미의 18연패)이다.

이 즈음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롯데는 매월 투수와 타자 한명씩 월간 MVP를 선정한다.
타자는 6월 한달간 3할4푼대 타율을 기록한 최기문에게 주면 그만이었지만 투수는 대상자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6월 한달간 롯데가 거둔 승수는 고작 3승. 이마저도 세명의 투수(매기,김장현,이정훈)가 나눠서 거둔 것이었다. 똑같은 1승 투수 중 MVP를 가린다는 것도 민망한 일. 고심끝에 16연패를 끊은 이정훈에게 MVP가 돌아갔다.

▲백인천
백인천 전 감독은 여전히 '롯데人'들에게 아픈 이름으로 남아 있다.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재임기간(2002. 6.25~2003.8.3)이었음에도 그 시간이 남긴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실상 백 전감독의 재임 기간은 구단과 갈등만으로 점철돼 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백 감독은 "구단의 지원이 형편없다"고 투덜거렸고 구단은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구단 돈으로 사욕을 채우려한다"고 반발했다.

이유야 어떻든 백 감독의 선수단 운영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백 감독은 구단을 믿을 수 없다며 2003시즌 일본인투수 모리 가즈마와 요코하마에서 뛰었던 보이 로드리게스, 재일교포 포수 김영화를 직접 영입했지만 모두 4월을 넘기지 못한채 퇴출됐다.

부임하자 마자 2군을 방문해 "이승엽 수준의 선수가 될 것"이라며 극찬했던 박종윤을 시즌 뒤 "자신의 조언대로 타격폼을 바꾸지 않는다"며 곧바로 퇴출대상에 올리는 등 오락 가락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황당 트레이드와 FA 헛투자
일단 사례만 열거해보자. 2001년 5월 롯데는 박정태와 투수 임경완을 묶어 LG에 보내고 투수 안병원과 내야수 안상준을 받는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2002년과 2003년엔 이대호와 손민한이 모두 트레이드 시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 중 이대호는 현대와 협상에 꽤 진전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다행히 모두 불발됐다.

구단의 어떤 선수도 트레이드 대상이 될 수 있다. 전력 보강을 위해서라면 당장의 아까운 카드도, 혹은 프랜차이즈 스타도 팀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트레이드 추진 이유였다.
대부분 감독의 팀내 영향력 증대를 위해 희생양이 될 뻔 했다. 이 중 한 감독은 실제 사석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수들이 아직 모르는 것 같다. 확실하게 본보기를 보여줄 생각"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다.

롯데는 FA 시장에서도 헛손질을 크게 했다.
총액 6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외야수 정수근과 투수 이상목을 영입, 2004 시즌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다시 꼴찌. 정수근과 이상목은 이후 나름대로 활약을 펼치기도 했지만 투자대비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특히 정수근은 잇단 폭행 사건에 휘말려 무기한 선수자격이 정지된 상황이다.

FA 영입 실패가 비단 롯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가치 판단의 실수는 분명 인정해야 한다. 2001시즌이 끝난 뒤 FA가 된 유격수 김민재를 "기량이 쇠퇴하고 있다.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다른 구단의 절반값에 잡으려다 놓쳤던 아픔도 있다.

▲영광과 상처의 이름 호세

호세는 1999년 롯데의 영웅이었다. 그의 호쾌한 장타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그러나 그만큼 그늘도 길었다. 그해 삼성과 플레이오프서 관중석에 배트를 집어던져 징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1년엔 삼성 투수 배영수를 폭행, 출장 정지를 받았다. 또 2002년 2월엔 몬트리올과 이중계약 파문을 일으켜 제명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롯데는 호세를 향한 구애를 계속했다. 결국 2006년 재영입한 호세의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일편단심 짝사랑을 접었다.

호세와 함께한 행복한 기억까지 지울 필요는 없지만 그만큼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무능력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로이스터 감독이 직접 뽑은 가르시아가 단 한시즌만에 그 이름을 잊게 만들고 나니 더욱 그렇다.

▲가슴에 묻어둔 이름들
2000년 4월18일. 임수혁이 쓰러졌다. 임수혁은 잠실 LG전 도중 2루 베이스위에서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7월24일엔 김명성 전 감독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임수혁은 병상에서, 김 전감독은 하늘에서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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