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기록원은 우산과 소금장수(펀글)
글쓴이 : 아자아자55   조회(1057)   등록일 : 2005-05-14 오전 10:26:00

야구에서 대기록이라고 하면 어떤 기록들을 말하는 것일까?


팬의 처지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홈런에 관한 기록들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03년 삼성라이온즈의 이승엽이 종전 일본의 왕정치가 가지고 있던 55호 홈런기록을 넘어 아시아 최다기록인 56호 홈런을 치는 장면을 벅찬 감정으로 지켜봤다. 야구계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이 홈런 하나로 들썩였던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2001년에 73개의 홈런을 치며 메이저리그의 한 시즌 최다 홈런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의 직업인 공식기록원으로서는 이 홈런에 관한 대기록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고 단지 대기록의 순간만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적어 놓는 것에 그친다.


대기록은 홈런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에서 대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종류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 프로야구만을 놓고 봐도, 1982년 원년에 백인천(당시 MBC청룡)감독 겸 선수가 기록한 4할대 타율(0.412), 1983년 삼미슈퍼스타즈의 재일동포 투수 장명부가 거둔 한 시즌 30승, 선동렬(당시 해태 타이거즈)선수의 통산 3번에 걸친 한 시즌 0점대 방어율기록(1986년 0.99, 1987년 0.89, 1993년 0.78), 2002년 최태원(SK 와이번스)선수의 1000 경기 연속출장, 2004년 박종호(삼성라이온즈)선수의 39경기 연속안타 등 적지 않은 대기록들이 탄생되었고 또 앞으로도 숱한 대기록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현재 프로야구 역사가 23년이 넘도록 단 한번의 퍼펙트경기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한 투수가 한 경기에서 상대팀의 타자에게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치 않고 완벽하게 아웃카운트 27개(연장전의 경우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를 잡아내 경기를 마무리짓는 기록으로 그야말로 대기록이다.


그러나 투수에게는 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퍼펙트경기도 공식기록원으로서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물론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만…….


퍼펙트경기보다 한 단계 아래지만 역시 대기록으로 인정받는 노히트노런은 국내에서 총11차례(1996년 한국시리즈 현대 정명원 포함)가 기록되었다.

그런데 홈런이나 퍼펙트경기와는 달리 노히트노런이나 연속경기 안타기록에 공식기록원이 미치는 영향은 때에 따라서 가히 절대적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노히트노런이 지켜지고 있는 상태에서 9회 2사 후, 타자의 타구를 야수가 잡다가 놓쳤다고 가정해보자. 평범한 땅볼이나 플라이타구였다면 간단하게 실책으로 기록해 노히트노런 기록이 유지되겠지만, 만일 타구의 코스나 타구의 강도 등이 안타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들어갈 소지가 있는 애매한 타구였을 경우, 공식기록원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노히트노런 기록이 유지될 수도 있고 깨질 수도 있다.


모든 선수와 야구팬들의 시선이 전광판에 고정되어 진 순간, 공식기록원은 길어야 10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결과의 잘잘못을 떠나 일단 역사에 남을 수도 있는 판정을 내려야만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노히트노런을 기록 중인 투수 개인이나 팀도 중요하지만, 현재 노히트노런의 수모를 당하고 있는 팀의 처지에서도 한 치의 심적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판정이 내려지던 간에 양팀 모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안타로 기록할 경우 노히트노런을 기록중인 팀에서 난리가 날 것이고, 실책으로 기록할 경우에는 노히트노런을 당하고 있는 팀에서 난리가 날 것이 뻔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실책으로 볼 수도 있고 안타로 볼 수도 있는 타구(기록원들만의 언어로는 흔히 5:5 라고 한다)라면 당신이 공식기록원의 자리에 있다고 가정할 때 어떠한 판정을 내릴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말 애매한 상황이라면 대기록을 깨는 방향으로 공식기록원이 판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기록을 밀어준다거나 만들어준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대기록을 향한 그 선수나 팀의 노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장애물은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기록은 아무 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며 실력없이 운으로만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기록판정관이라고 해서 책임감 없이 쉽사리 판정을 내려 무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그 기록을 중단시킬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과감히 그 기록의 가치를 위해서라도 중단시켜야 한다. 물론 진행중인 대기록을 공식기록원의 손으로 중단시키는 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플레이의 주인공인 선수들 당사자가 아닌 기록원 때문에 대기록이 허무하게 날아갔다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공정함을 목숨으로 아는 공식기록원이나 심판원도 대기록을 기다린다.

다만 그 기다림은 대기록이 판정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번지지 않고 선수들 스스로의 자력에 의해 순수히 탄생되길 바라는 기다림인 것이다.


KBO 기록위원회 1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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